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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 사료 해석-한능검,공무원,수능] 

제 1장.  단군과 고조선

- 고려 후기 승려 일연이 고려 충렬왕 7년 편찬한 [삼국사기]중에서 단군조선에 대해 서술한 부분

 

『위서(魏書)』에 이르기를, “지금부터 2000년 전에 단군왕검(檀君王儉)이 있어 아사달(阿斯達)에 도읍을 정하고 나라를 열어 
조선(朝鮮)이라 불렀으니 중국의 요(堯) 임금 삼황오제(三皇五帝) 중 하나로 이름은 고(高)와 같은 때이다”라고 하였다.

 

*아사달 : 『경(經)』에는 무엽산(無葉山)이라고도 하고, 또한 백악(白岳)이라고도 하니 백주(白州) 땅에 있다. 혹은 개성의 동쪽에 있다고 하니 지금의 백악궁(白岳宮)이 이것이다

 

- 단군왕검 고조선 건국 = 기원전 2333

 

[사료해석] - 단군과 고조선

 

『고기(古記)』에 이르기를, “옛날에 환인(桓因)의 서자(庶子)인 환웅(桓雄)이 천하(天下)에 자주 뜻을 두어 인간 세상을 탐하여 구하였다.
아버지가 아들의 뜻을 알고 삼위태백(三危太白)을 내려다보니 인간(人間)을 널리 이롭게 할 만하여, 이에 천부인(天符印) 3개를 주며 가서 다스리도록 하였다.
환웅은 무리 3000을 거느리고 태백산(太伯山) 정상의 신단수(神檀樹) 아래로 내려왔으니, 이곳을 신시(神市)라 하고 그를 환웅천왕(桓雄天王)이라 하였다.
그는 풍백(風伯)⋅우사(雨師)⋅운사(雲師)를 거느리고 곡식⋅생명⋅질병⋅형벌⋅선악을 맡아 관장하고, 모두 인간의 360여 가지 일을 주관하면서 세상에 머물며 다스리고 교화하였다.
이때 곰 한 마리와 호랑이 한 마리가 있었는데 같은 굴에 살면서 항상 신령스러운 환웅에게 사람이 되게 해 달라고 빌었다.

 

*환인 : 제석(帝釋)을 이른다. 제석은 하느님을 뜻하는 불교식 용어이다.

*정상 : 즉, 태백(太伯)은 지금의 묘향산(妙香山)이다

 

- 단군왕검은 하느님의 후손인 동시에, 태양신의 손자라고 볼 수 있다. = 제정일치(단군=제사장, 왕검=정치적 지배자)

- 웅녀=곰. 토템(totem)사상(토테미즘)

- 풍백,우사,운사 = 농경사회

- 형벌 = 사유재산 형성, 계급의 분화

- 환웅이 무리 3천을 이끌고 신단수로 = 외래 집단의 이주

- 곰과 호랑이 부족 = 토착집단

- 환웅과 웅녀의 결합 = 자손인 단군왕검이 이주집단과 토착집단의 대표

- 호랑이 부족의 배제 = 환웅부족의 다른 부족 통합 지배

- 홍익인간 = 인간을 널리 이롭게 함

 

단군 초상

 

이때 신(환웅)이 영험한 쑥 한줌과 마늘 스무 쪽을 주면서 이르기를, ‘너희들이 이것을 먹고 100일 동안 햇빛을 보지 않으면 곧 사람의 형체를 얻을 수 있으리라’라고 하였다.
곰과 호랑이는 그것을 받아먹고 금기한 지 21일 만에 곰은 여자의 몸이 되었으나, 호랑이는 금기하지 못해서 사람의 몸이 되지 못하였다.
여자가 된 곰[熊女]은 혼인할 사람이 없었는데 매번 단수(檀樹) 아래에서 아이를 갖게 해 달라고 빌었다.
이에 환웅이 잠시 사람으로 변하여 그녀와 혼인하였고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니 이름을 단군왕검이라 하였다.
단군왕검은 중국의 요임금이 즉위한 지 50년인 경인(庚寅)년평양성(平壤城)에 도읍하고 비로소 조선(朝鮮)이라 불렀다.
또한 도읍을 백악산(白岳山) 아사달(阿斯逹)로 옮겼는데, 그곳을 또는 궁(弓)홀산(忽山) 또는 금미달(今彌達)이라고도 불렀는데, 이곳에서 1500년 동안 나라를 다스렸다.
주나라 호왕(虎王, 무왕(武王)을 가리킴)이 즉위한 기묘(己卯)년에 기자(箕子)를 조선에 봉하니, 단군은 곧 장당경(藏唐京)으로 옮긴 뒤에 돌아와 아사달에 숨어 산신(山神)이 되었고 나이가 1908세였다"라고 하였다.

 

*경인년 : 요임금이 즉위한 원년은 무진(戊辰)년이므로 50년은 정사(丁巳)년이지 경인년이 아니다. 경인년이라고 한 것은 사실이 아닌 것 같다

*평양성 : 지금의 서경(西京)

*궁 : 방(方)으로도 쓴다

 

- 고조선은 요령지방과 대동강유역을 중심으로 성장하여 점차 인접한 족장 사회를 통합하면서 한반도까지 발전 = 비파형 동검, 고인돌(탁자식)의 출토 분포가 근거

- 기원전 3세기 경에는 부왕, 준왕 같은 강력한 왕이 등장하여 왕위 세습. 그 밑에 상, 대부, 장군등의 관직을 두었다.

- 요서지방을 경계로 연나라와 대립할 만큼 강성

- 8조법 = 사람을 죽인자는 즉시 죽인다,남에게 상처입힌자 곡식배상(생명존중,노동력중시), 도둑질한자는 노비로(사유재산성립,계급분화), 여자는 정절을 지키고 음란한 짓을 하지 않는다(가부장적사회)

 

고조선의 세력범위

 

당(唐)나라의 「배구전(裵矩傳)」에 이르기를, “고려(高麗)는 본래 고죽국(孤竹國)으로 주(周)나라가 기자를 봉해 조선이라고 하였다.
한(漢)나라 때 나누어 3군(郡)을 두었으니, 현도(玄菟)⋅낙랑(樂浪)⋅대방(帶方)이라 이른다”라고 하였다.
『통전(通典)』에는 또한 이와 같이 설명하고 있다.
'『한서(漢書)』에는진번[眞]⋅임둔[臨]⋅낙랑[樂]⋅현도[玄]4군으로 되어 있는데, 여기에서는 3군이라 하고 이름 또한 같지 않으니 어찌된 것인가?'

 

*고죽국 : 지금의 해주(海州)

*대방 : 북대방(北帶方)

 

- 일제강점기의 최남선은 단군신화에 곰과 호랑이가 등장하는 사실에 동물을 대상으로 한 토테미즘의 존재를 강조하였다

- 민족주의 사학자 신채호는 고조선을 신,불,말조선(삼조선)으로 구성된 역사체임을 전제로 하여 중심 무대가 요서와 요동 지역이라고 보기도 했다.

- 단군신화 속 주술사인 샤먼을 통해 샤머니즘의 종교적 세계를 찾아 볼 수 있다.

- 한4군 = 위만의 집권(기원전 194. 준왕을 몰아내고 집권. 철기문화 본격수용, 활발한 정복사업, 농업, 상업 발달, 한,예,진의 중계무역)

- 한(무제)의 침입으로 위만조선은 멸망(기원전108) > 한 4군 설치 >고구려 공격으로 한 4군 소멸

 

- 고조선 건국 신화인 단군 조선에 대한 기록은 [삼국유사]이외에도 이승휴가 지은 [제왕운기](고려 충렬왕 13년), 권람(1416~1465)이 지은 [응제시주], [동국여지승람], [세종실록지리지]등에 실려있다.

- [동국통감]에서는 단군을 한반도 역사의 시작으로 기술하고 있다.

* 동국통감 : 성종대 서거정 등이 왕명에 의하여 편찬한 우리나라 최초의 관찬통사. 삼국사절요와 고려사, 고려사절요를 참조하여 고대부터 고려말까지의 역사를 수록하였다.

 

- 중종 대에 편찬된 관찬 지리서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평안도 강동현 서쪽에 큰 무덤이 하나 있는데, 단군의 능이라고 전해진다'라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신증동국여지승람 제55권 / 평안도(平安道))

'대총(大塚) 하나는 현의 서쪽으로 3리에 있으며 둘레 4백 10척으로 속담에 단군묘(檀君墓)라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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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사료해석] 단군왕검과 고조선 / 환인 아사달 토테미즘 농경 이주 지배자 위만조선 8조법 고조선이기록되어있는

*주관적해석포함. 정보사용의 책임은 사용당사자에게있음.

*사료원본-『삼국유사』권1, 「기이」1 고조선 왕검조선

*참조 : 국사편찬위원회(우리역사넷),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국정교과서(7차)

생활밀착한국사-사료해석ⓒLIFEEXO-HISTORYZIP

작성기준일 21-0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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